코드 밀 키트 #
<코드 밀 키트>는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정거장» 커미션으로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2022년 7월 21일부터 10월 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드’에 관한 질문을 모으고 대화하는 워크숍으로 진행됩니다. 전유진, 김승범, 정앎은 공동 기획자이자 호스트로서 돌아가며 워크숍을 이끌고, 때로는 게스트를 초대하여 대화를 진행합니다. 워크숍은 언어로서 코드, 프로그래밍 패러다임, IT 신화, 문화자본, 오픈 소스 등 매주 다른 소주제로 구성되며, 사전에 참여자를 모집하고 읽기 자료를 제공합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모아진 생각들은 키트로 제작되어 10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워크숍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위 ‘PROGRAM’ 메뉴의 각 모임에서 신청서(구글폼 링크)를 작성해주세요.
목차: 환영메시지 #
소화불량 시대의 코드 읽기 #
전유진 #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기술 이슈가 쏟아지는 요즘, 다들 어떻게 버티고 계시는가요? :) 촉각을 곤두세워 재빠르게 변화를 살피고 있나요?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탄 것처럼 겨우 쫓아가고 있는 기분인가요? 혹은 이미 지쳐 버린 마음으로 관심의 스위치를 꺼두었나요?
‘컴퓨터'라는 말도 이제는 참 예스럽게 느껴지네요. 1950년대 계산하던 여성 노동자를 일컫던 용어가 개인이 소유하는 필수 전자제품으로 그 의미가 변한 것처럼, 지금의 ‘컴퓨터'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아요. 조만간 재정의의 전환점이 오지 않을까요. 80년대 옆집 오빠가 가지고 있던 8비트 컴퓨터는 당시 제 눈엔 (제가 가질 수 없는) 그저 좀 비싼 장난감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제 삶이 컴퓨터와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해왔는지 돌이켜보면 약간 소름이 돋네요. 영화 에일리언 3에서 주인공이 에일리언의 새끼를 낳는 거의 그 수준의 결합이 아닌가 싶은 정도입니다. 그만큼 컴퓨터 기술은 매우 빨리 그리고 깊이 우리 삶에 침투한 무언가가 아닐까 합니다.
‘에일리언'을 떠올렸지만, 마냥 기술이 싫어졌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기술은 언제나 ‘편리한 것'이라는 오랜 믿음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었고 어느 순간 그 믿음에 여러 질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런 질문을 공유할 겨를도 없을 만큼 삶과 기술의 속도 둘 다 너무 빠르다는 사실에 꽤나 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늦으면 안 된다는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도시락을 까먹듯 컴퓨터 기술에 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요? 특히 ‘코드'라고 하는 인간이 만든 ‘언어'에 대해서요. ‘코드'는 컴퓨터의 언어인가요? 컴퓨터를 다루려고 만든 ‘인간의 언어’인가요? 결국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자 만든 언어일까요? 궁극적으로 비인간 존재와도 소통하는 언어가 될까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대부분의 기술이 태어나죠. 꼭 기계뿐만 아니라 인간도 그렇듯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그 해결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 같은 문제를 놓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술로 인해 우리 삶이 편해졌지만, 그것이 항상 최선이었을까요? 가장 최신의 기술이 가장 최선의 기술인가요?
기술은 여전히 편리하고, 당장 없으면 바로 불편해지지만, 동시에 너무 편리해서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 앞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무언가이기에 우리는 기술을 쉽게 의인화해서도, 타자화해서도, 혹은 이분법적인 뻔한 결말을 붙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받을 때는 유산이었던 것 같은데 다음 이들에게 이대로 넘기려 보니 인류의 문명이란 엄청난 짐과 숙제처럼 느껴지네요.
잠깐 까마득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코드 밀 키트의 설명을 위해 도시락 까먹는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왜 까먹나요? 점심시간에 더 여유롭게 놀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대로는 싫고 ‘딴짓'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쉬는 시간에 먹는 도시락이 더 꿀맛인 것처럼, 솔직히 딴짓을 할 때 흥미와 집중력, 아이디어도 더 잘 생겨나는 법이죠. 고백하자면 저는, 어떻게 하면 늘 딴짓할까 고민하며 살다가 자꾸 딴짓이 본업이 되어 다시 새로운 딴짓을 만들고 또 그게 본업이 되어 다른 딴짓을 찾고…그러고 보니 ‘딴짓'이 저에게는 삶의 ‘변수'와 ‘반복문'이네요.
코드 밀 키트는 코드를 화두 삼아 미술관에서 모이는 일종의 ‘딴짓’ 회합입니다. 기술은 이렇게 굳이 핑계를 만들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코딩만 잘하면 되지, 코드에 대해 뭘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누군가는 말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매주 ‘밀 키트’라는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소풍을 가니까 도시락을 먹는 게 아니라, 도시락을 먹기 위해 소풍을 가는 것처럼요. 도시락이 있다면 그 핑계로 나들이 가는 기분이 들고 실제로 또 갈 수 있는 것처럼, 괜스레 맛있는 이름을 붙여 딴짓을 정당화해보려고 합니다. :)
코딩 배우는 모임 아닙니다. 코딩 몰라도 돼요. 오히려 코드 안 본 눈 모십니다. 안 본 눈들이 코드에 지쳐 뻑뻑해진 눈에 촉촉함을 좀 나눠주세요. 코드를 통해 기술의 사회적 코드를 읽어보는 모임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미뤄둔 의심과 질문을 편하게 늘어놓는 자리를 엽니다.
프롬프드 prompted (첫 마을 first town) #
정앎 #
지금 제 눈앞에는 막대 하나가 깜박이고 있습니다.
위치는 어두운 터미널 속 일수도 있고, 빈종이를 의태한 디지털 문서 상 일지도 모릅니다.
이 기다림에 익숙한 장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초의 연산은 사람의 몸으로, 손으로, 머리로 행해졌다. 연산은 별을 관측하고, 내 위치를 알고, 내 터를 정하고, 교환을 하는 등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이후 긴 기간을 거쳐 여러 변환점을 거쳐 발달해온 연산 기술은 개발에 숙련된 기술자, 특별한 장비, 그리고 긴 개발 기간이 드는 정밀한 기계적 장치들에 깃들기 시작한다.
1940년대 후반 프로그램 내장식 컴퓨터(stored-program computer)가 고안된다. 범용 기계(general-purpose machine)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최초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high-level programming language)가 발명된다. 이렇게 언어로 매개된 인간-자동 시스템 상호작용 관계가 시작한다, 고 생각할 뻔했다.
범용(general-purpose) 기계에게 의도(purpose)가 있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직접 대면하고 소통해가며 알아가는 방법이 좋죠.
이런 태도로, 컴퓨터와 마주하려 합니다.
고요한 기기의 매끈한 표면이 거울과도 같습니다. 여러 각도를 바꿔가며 들여다봐도 그 너머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다름 아닌 제 모습이 비쳐 보입니다.
‘전원을 켜 주세요.’
전원을 켭니다.
순식간에 화면이 이미지들로 채워집니다.
화살촉, 혹은, (잘린) 손이 주어집니다. 버튼이 보입니다.
어느새 몸이 사라진채 ───────────── 겨누고, 손가락질하다가,
연이어지는 부드러운(天衣無縫 seamless) 행위 속에서, 왜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본래 의도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첫 마을(first town)이 있다. 아무리 방대한 세계관과 유연한 자유도를 자랑하는 오픈 월드(open world)라고 해도 게임이 시작하는 지점은 있기 마련이다.
첫 마을의 의도는 게임 세계의 기본 법칙과 플레이어에게 허용된 행동 공간(action space)의 범주를 시행착오를 통해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전체 플레이의 작은 일부분이지만 첫 마을은 플레이어의 위치를 정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극단적으로, 첫 마을에서부터 몰입이 힘들다면 그대로 하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혹은, 어디에선가 들은, 이런 이야기도 있다. 이 플레이어는 의도치 않게 첫 마을을 본 게임으로 착각해, 터전을 일구고, 마을 NPC(게임 마스터가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직접 다룰 수 없는 캐릭터)들과 관계를 쌓고, 눈앞에 벌어지는 이벤트들에 몰두하며 첫 마을만을 열심히 플레이했다. 마련된 콘텐츠 대부분 존재조차 모르고, 제작자가 준비한 메인 시나리오도 놓쳤긴하지만, 어디서든 플레이는 가능한 것이다.
다시 돌아와, 우리는 아직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플레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질문을 통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이동’을 하다 보면, 길이 없는 방향과, 새로운 길이 열리는 방향, 그리고 일대의 지형이 파악되겠죠. 마지막으로 여기에 다른 플레이어들 또한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도록 합시다. (피아 구분할 이유는 없습니다.)
명령어를 입력해주세요.
마음을 휘젓는 질문 #
김승범 #
“그런데 이거 해서 어디에 써요?”
코딩을 다루던 수업 시간, '코치'의 태도로 대하고 있던 한 학생이 갑자기 질문을 던집니다. 일명 돌직구라고 하죠. 수업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오늘 수업 내용에 집중하던 제 사고는 학생이 던진 질문에 학교 밖으로 튕겨나가 버렸습니다.
여러 마음이 섞이고 충돌하더군요.
OOO 분야에서 쓰일 수 있지 … (물론 바로 써먹을 수 있는건 아냐)
차근차근 배우면 너가 상상하는 모든걸 만들 수 있단다 … (실은 엄청 공부하고 노력해야 해)
지금 어색하고 실수해도 점점 나아질거야 … (인공지능이 이제 너보다 코딩 더 잘 하네)
지금 세상이 컴퓨팅으로 채워져있어 … (자세히 몰라도 당장 사는 데 지장은 없지)
너가 하고픈 모든 일에 컴퓨팅이 필요하게 될거야 … (너가 하고픈 일을 찾는게 먼저구나)
… ( … )
코딩과 같은 기술매체 수업이 때로는 배워야하는 기술 자체의 분량 때문에 그 안에 머물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업 안에서 여러 응용이나 맥락을 전달하려고 해도 학생 개개인의 삶에 닿기까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수업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끝없이 쏟아지는 기술적 존재들은 잔잔한 (그리고 무관심한) 내 마음 속에 가라앉아 다시는 수면 위로 올라올거 같지 않을, 켜켜이 쌓이기만 하는 퇴적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합니다.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단단히 굳어가는 퇴적물을 한 번 휘저어 봐야 하는거죠.
흙탕물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적물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할겁니다.
다시 내 마음이 잔잔해지면 대부분이 가라 앉을건데요,
하지만 일부 성분이 내 마음에 용해되어 그 전과는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모이고 대화하는건 또 다른 무언가를 쌓기 위함이 아닙니다.
평소와는 다른 관점으로, 혹은 감각으로 기술매체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한 번 휘저어 보려는 것입니다.
{ 각자의 질문을 만들어 봅시다. }
호스트 소개 #
전유진 #
전유진은 영화음악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부터 사운드, 퍼포먼스, 기술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 작업을 발표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혀왔다. 2015년 아티스트그룹 서울익스프레스를 결성하여 《언랭귀지드 서울》, 《인더스트리얼 퍼포먼스》 등 실험적인 서사구축에 주목하는 다원예술공연을 만들었다. 활동 초기부터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워크숍과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왔으며, 2017년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을 설립하여 기술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을 이어가고 있다. http://womanopentechlab.kr/
김승범 #
김승범은 엔드유저를 위한 (혹은 의한) 컴퓨팅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메타미디어로서의 컴퓨팅이 리터러시 일부가 되어 엔드유저 개개인이 사유하고 표현할 때, 우리 문화와 사회를 채우고 있는 기술 매체에 대해 다르게 읽고 생각할 계기와 맥락이 만들어진다 생각한다. 이를 위한 언어적이면서, 동시에 비언어적인 경험을 일으키는 KIT를 만들고, 워크숍과 전시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정앎 #
정앎은 소프트웨어의 겉껍질(interface)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터페이스의 문법을 점검해보기도 하고, 이를 굴절해 자동화 기술과 함께 우리가 나아갈 (새) 경로를 그려보기도 한다.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p5.js의 코드 베이스에 기여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https://almchung.github.io/